[법률칼럼] 싹 다 퇴학시켜.


학교폭력 피해를 입은 학생의 학부모들은 변호사를 찾아와서 “우리 아이가 따돌림을 당해서 너무나도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다시는 가해 학생과 마주치지 않도록 전학 처분을 받게 하고 싶습니다.“라는 요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변호사는 항상 고민을 하게 된다. 의뢰인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예, 어떻게든 전학시켜 보시죠.“라고 해야 하지만 가해의 정도를 두고 보니 “전학까지는 안 나오겠는데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고, 한편으로는 가해 학생들도 아직 어리기 때문에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인데 그렇게까지 해서는 안 된다는 개인적 소견을 표현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변호사는 대게 T(MBTI에서 누군가에게 공감하기보다는 이성적 판단을 하는 사람을 T 성향으로 분류한다.)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있다. 피해의 정도에만 공감하다 보면, 정작 ‘정말 피해를 당한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게 된다. 변호사들이 가장 난처한 경우는 진실성 있어 보이는 의뢰인의 말을 믿고 법정에 섰다가 의뢰인의 말과는 완전히 다른 증거를 마주하게 되는 경우다. 우리 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다.

사건을 처음 접하게 된 변호사는 학부모에게 묻는다. “어떻게 따돌림을 당했다는 것인가요? 증거 있어요? 카톡 메시지나 목격한 학생이 있냐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대문자 T가 두 개쯤은 있어야 사건의 실체에 다가설 수 있다.

사건을 판단해야 하는 판사나 학교폭력심의 위원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가해 관련 학생도, 억울한 피해 관련 학생’도 없어야 한다. 우리 법은 어떤 사실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증명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두고 있다. 따돌림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학생 측에서 억울한 일이 있을 수도 있지만, 가만히 있던 가해 관련 학생 입장에서도 그 나름의 억울함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정립된 원칙이다.

이 원칙이 반대로 적용되면, 누군가가 나를 범죄자로 지목하기만 하면 곧바로 내가 범죄자로 확정될 위험성이 있다. 아무런 잘못 없이 평범한 일상을 향유하고 있던 사람이 “나는 범죄자가 아니에요.“라고 하는 증거를 시시각각 수집하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말 억울한 상황이라서 가해 학생을 날려버리고 싶다면 더 나아가서 생각할 것이 있다. 따돌림에 대한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 중요하고, 증거가치가 있는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는 점은 훨씬 더 중요하다. 우리 아이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증거가 아니라, 우리 아이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라는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 아이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라는 증거 말고, ‘따돌림이 있었다’라는 증거가 필요하다.

이렇게 우리 아이가 당했다는 증거를 수집했다고 해서 곧바로 가해 학생을 보내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해당 증거를 통해서 확인된 사실이 법적으로 따돌림에 해당하는지, 가해 학생이 한 행위에 대한 처분으로서 어떠한 수준의 처분이 적절할 것인지 평가하는 과정이 수반된다. 제3자의 입장에서는 늘 고민하게 된다. 보내버리는 것이 우리 아이의 건강한 성장에 확정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증거가 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움이 될 것이다’ 말고, ‘도움이 된다’라는 증거가 필요하다. 강재규 법률사무소 진언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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