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韓 노벨과학상, 환경 먼저 마련해야
요즘 어디서든 노벨상이 화두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문학계는 물론, 사회 전반이 들썩이고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계 분위기는 좀 다르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며 “현실이 절망적인데, 노벨상을 꿈꿀 수 있겠느냐"는 아우성이 넘쳐난다.
최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여실히 드러났다. KAIST 출신인 황정아 의원은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폭거가 이공계 학생들과 청년 연구자들에게 깊은 상흔을 남겼다"며 “학생들은 의대로 떠나고 연구자는 고통받고 있다"고 한탄했다. 또 “실험 진행도 하지 못하는 등 연구 중단 사례가 터져 나온다"며 “이런 상황에서 노벨상을 꿈꿀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현재까지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노벨상이 미국·유럽에 편중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웃 일본에선 1949년을 시작으로 25명이나 나왔다. 중국·대만 등도 간혹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선진국 반열에 든 우리나라에서 한 명도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실 단기 성과에 치중돼 온 한국 특성상 노벨상이 나올 리는 만무하다. 실제 노벨과학상은 장기 연구·성과에 쏠려 있다. 최근 10년간 수상자를 보면, 연구 시작 나이는 평균 37.7세, 연구 완성 시기는 55.3세로, 노벨상 수상은 평균 69.1세에 이뤄졌다. 수십 년간 쌓아온 역량이 뒷받침된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출연연 정년이 단축된 데 이어, 낮은 처우로 인해 인력 유출이 계속돼 왔다. 의대 정원 증원으로 인한 이공계 인재 이탈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여기에 정부의 일방적인 예산 삭감은 가뜩이나 어려운 환경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됐다. 장기는커녕, 안정적인 연구마저 어려운 상황을 초래한 셈이다.
이광형 KAIST 총장은 국감에서 “정부가 노벨상을 위해 지원할 부분이 있느냐"는 질의에 “연구비를 주고 간섭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다. 줄곧 제기돼 온 과기계의 요구와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노벨상은 단순 명예가 아닌, 인류·국가 발전에 기여할 연구 성과를 도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당장 수상자가 나오긴 어렵겠지만, 하루빨리 안정적인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