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오래된 숙제, 蘇堤(소제)


얼마 전 국가등록유산인 구 철도청 대전지역사무소 보급창고 3호 건물에서 ‘대전역의 사회문화사’를 주제로 학술대회가 있었다. 근대기 대전역을 배경으로 한 음악, 건축, 영화, 문학 등을 돌아보는 자리였고, 도시 대전의 탄생과 발달에 대전역이 중대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대전역의 역할 수행을 위해 당시 대전에는 꽤 많은 철도종사원이 있었고, 또한 대전역을 중심으로 상당히 넓은 지역에 철도 관련된 시설들이 있었다. 이른 시기에 정동 일원에는 50여 동의 철도관사를 비롯해 철도병원, 철도아파트, 철도구락부 등이 조성됐고, 가장 늦은 시기에 조성된 곳은 소제동으로 100여 동이 넘는 관사와 대전 최초의 야구장 등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정동지역에 있던 철도 관련 시설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도심이 확장돼 가던 역의 서쪽을 향한 폭격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반면 소제동의 철도관사는 놀라울 정도로 고스란히 남겨졌다.

건립 당시에는 독특한 건축양식과 설비로 인해 선망의 대상인 철도관사였지만, 도시의 광역화와 더불어 새로운 주거 건축의 끊임없는 등장으로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졌다. 2010년 무렵만 해도 철도관사를 연구하는 전문가 외에 대부분은 대전역 동편의 낙후된 마을 정도로만 인식했다.

이런 소제동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온 것은 2018년 역세권 재정비촉진계획이었다. 대전역 중심의 광범위한 개발사업으로 소제동 대부분이 사업 대상지가 됐고 계획대로라면 철도관사의 약 90%가 철거될 예정이었다. 관사의 멸실이 가시화의 한켠으로 근대유산으로서의 관사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고, 결국 도시재정비위원회의 권고를 통해 재개발부지 한편을 공원으로 조성해 관사를 일부 보존하도록 계획이 변경됐다.

소제동 관사의 보존은 도시개발이라는 경제 논리로부터 사라지는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이었지만, 이 일에 힘을 보탰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외지에서 유입된 또 다른 경제력이었다. 재개발 계획이 수립되던 즈음 소제동에는 외지의 자본으로 관사를 리모델링한 카페와 레스토랑이 갑자기 늘어났고, 쇠락한 마을과 묘하게 대비되면서 불과 몇 년 사이에 소제동은 이른바 핫플레이스가 됐다. 민간에 의한 유명세를 통해 오랜 건축물을 활용해 지역의 정체성을 유지하자는 여론이 힘을 받게 된 것이다.

이후 사업의 구체화를 위한 다양한 검토가 시도됐다. 그 과정에서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의 근대역사문화공간 조성 사업 공모도 했다. 많은 예산이 필요했기에 국비 확보는 중요한 문제였지만, 대부분의 관사가 철거되는 개발사업을 이미 승인해 놓고 일부의 관사만으로 근대역사문화공간을 조성한다는 계획이 심사위원들에게 좋은 점수를 받을 수는 없었다.

사업은 민선 8기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시급성에 따라 선별해 발 빠르게 자체 예산으로 사업을 추진하면서 긴 호흡이 필요한 부분은 국비 공모 등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진행한다는 원칙으로 수행 중이다. 중앙부처의 행정절차를 마친 올 하반기 드디어 관사 마을의 큰 그림을 그리는 건축기획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관사의 이전 및 복원, 보존과 활용 사이에서의 균형,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 첫 시청사를 거쳐 소제동으로 이어지는 근대문화 클러스터 연계, 그리고 지역민과의 갈등 해소 등 앞으로 풀어야 하는 현실적인 고민은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럼에도 앞으로의 소제동 근대역사문화공간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은, 그동안 밀렸던 숙제를 마쳤다는 후련함 때문일 것이다.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본격적인 사업의 시작을 위해 새로운 각오를 다질 일만 남았다. 강병선 대전시 문화유산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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