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근 칼럼] 수도권이라는 바벨탑
얼마 전 한국은행이 파격적인 주장을 내놓아 세상을 놀라게 했다. 과도한 입시경쟁이 사교육 부담과 교육기회 불평등, 사회 역동성 저하, 수도권 인구집중, 집값 상승, 저출산 등을 유발한다는 보고서였다. 해결책으로 명문대 신입생을 지역별 비례로 선발하자고 제안했다.
국책은행이 사회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하고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일각에서는 정부 부처나 연구소도 아닌 한국은행이 왜 이런 주장을 하는지 의아하게 여겼지만 꽤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동의했다. 누군가는 문제를 제기하고 또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굳이 교육을 화두로 우리 사회 문제점을 짚어냈지만 그 핵심에 ‘수도권 집중’이 가로놓여 있다. 이거야말로 현재 대한민국이 당면한 구조적 모순과 갈등의 근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도권 중에서 특히 강남은 돈을 무기로 대한민국의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모든 것을 삼키는 블랙홀이다. 2022년 우리나라 증여세의 37.2%를 강남3구와 용산구에서 냈다. 서울·연세·고려대 입학생 12.59%, 의대 신입생의 13.29%가 강남 출신이었다. 전체 인구의 3.12%에 불과한 강남3구가 자본의 끝없는 확대 재생산을 넘어 미래세대의 몫까지 선점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 집중은 도시화와 산업화, 무한 자본경쟁의 산물이다. 정부는 1960년대부터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수도권에 모든 역량을 몰아넣어 공장을 지었다. 농촌인력이 도시로 몰려들어 값싼 노동력을 제공했고, 인구가 늘어나니 수도권에 계속 산업단지와 신도시를 조성하고 도로, 학교와 같은 인프라를 공급했다. 그러다 보니 살기 편하고 일자리가 많은 수도권에 사람이 더 몰리는 현상이 거듭됐다. 산업화가 도시화와 수도권 집중을 부른 것이다.
문제는 지방이 침체만 거듭해왔다는 점이다. 청년들은 교육과 일자리, 기회를 찾아 수도권으로 빠져나갔고, 기업들도 자본과 소비자가 많은 수도권으로 몰려들었다. 수도권은 갖가지 이유로 규제를 풀고 완화했지만, 지방의 농지는 식량안보, 임야는 산림보호라는 명목으로 용도를 철저히 규제해왔다.
이 때문에 강남에 집 한 채를 산 사람은 수십억 부자가 됐고, 지방 농민들은 몇 푼 안되는 논밭은 끌어안게 됐다.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과 무관하게 구조적으로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발생했다. 국토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의 50.7%, GDP의 52.5%가 몰린 초집중국가가 됐다. 지방의 희생 위에 수도권이 성장하고, 수도권의 맨 꼭대기에 강남이 올라탄, 수도권 불패 강남신화가 탄생한 것이다.
누구나 공감하듯 현재 대한민국의 가장 큰 위기는 인구감소이다. 인구감소는 산업계 인력난과 부동산 하락, 경제 침체, 학령인구 및 병역자원 감소 등 온갖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인구감소는 지방의 문제이지 수도권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 지방의 집값이 폭락하고 아파트 미분양이 속출하지만 수도권은 여전히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지방의 소멸위기에 대해 정부와 정치권이 대응이 소홀하기 짝이 없다. 가끔 무엇을 할 것처럼 떠들다가 금세 잠잠해지곤 한다. 수도권만 바라보고 법과 제도를 만들고 정책을 펴온 타성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대한민국은 수도권 강남을 정점으로 산업과 금융 자본이 몰리고, 땅과 건축물이라는 도시 공간을 토대로 끝임없이 온 나라의 돈을 빨아들이며 부를 증식하고 있다. 이러한 자본 전쟁에서 지방은 방어할 기회도 갖지 못한 채 고사하고 있다. 패자인 지방의 고통과 소멸 위기를 외면한 채 수도권이 부를 독점하는 승자독식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브레이크 없는 욕망의 벽돌로 언제까지 수도권 바벨탑을 쌓아 올릴 것인가? 지방이라는 기초가 철저히 무너지고 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