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음모론의 유혹, 달콤하지만 치명적인
19세기 중반 골드러시의 물결을 따라 중국인 노동자들도 바다 건너 이주를 단행했다. 10년 뒤 중국인이 캘리포니아 전체 인구의 약 10%를, 광산 지구에서는 25%를 차지할 정도로 다수가 되자 ‘중국인 문제’가 대두했다. 1858년 중국인 이주 금지법을 추진한 정치인 중에는 스탠퍼드 대학 설립자 릴런드 스탠퍼드가 있었다. 한때 중국 이민자를 ‘쓰레기’라고 부르며 경멸했던 그는 대륙횡단철도에 투자한 뒤 중국인 노동자를 ‘성실하고 근면한 민족’이라 평가하며 ‘중국인 50만 명만 있으면 이 세상에 못 할 게 없다’고 극찬했다. 평가가 극단적으로 바뀐 이유는 중국 이주 노동자들이 난항을 거듭하던 로키산맥 구간 터널 공사를 목숨 바쳐 성공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1869년 대륙횡단철도 개통 뒤 일자리를 찾아 중국인 노동자가 도시로 몰려들자 혐중 감정이 고조됐다. “중국인들이 쥐를 좋아해 쥐 고기가 거래된다”, “중국인 여성은 모두 매춘부여서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 등 가짜 뉴스가 난무했다. 결정적으로 1873년부터 시작된 장기 공황 여파 속에서 정치인들이 “외국인이 선량한 백인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며 부추기자 서부 곳곳에서 반중 폭동, 추방 및 학살이 횡행했다. 1871년 로스앤젤레스 차이나타운 대학살(중국인 17명 살해)로 시작된 광란의 질주는 1885년 와이오밍주 록스프링스 광산에서 백인 광부가 동료 중국인들을 학살한 대참극(28명 살해)으로 이어졌다. 이 와중에 중국인 이민을 금지하는 법안이 1882년 발의돼 하원(202 대 37)과 상원(32 대 15)의 압도적 지지 속에 ‘중국인 배척법’이 통과됐다.
지난 9월 10일 공화당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아이티 이민자들이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는다”고 말해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TV 토론회 이후 오하이오 지역에 무려 30여 건의 폭탄테러 협박이 쇄도해 학교들이 연달아 문을 닫고 공공기관·병원에는 대피령이 내려지는 대혼란이 빚어졌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열악한 이민 정책의 사례로 계속 부각한 스프링필드는 어떤 곳일까. 한때 인구가 8만 명에 달하며 번창하던 제조업 도시는 공장의 국외 이전으로 인구가 약 5만8000명까지 줄었다가 오히려 최근 3년간 유입된 아이티 이민자들로 침체된 도시가 살아나는 중이었다. 공화당 소속 오하이오 주지사 마이크 드와인이 뉴스에 나와 반려동물 식용 주장은 사실무근이며 가짜 뉴스라고 설명했지만 대혼란을 잠재우기에 역부족이었다.
미국 대선후보 TV 토론에서 나온 트럼프의 기괴한 주장은 철저히 계산된 발언으로 보인다. 선동 정치로 막대한 이익을 거둔 트럼프에게 이민자 혐오는 지지층을 결속시킬 효과적 도구다. 그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가장 먼저 ‘이민자 침략’으로부터 ‘도시를 구하겠다’며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이민자 추방을 공식 선언한 바 있다. 그리고 그 시작점은 이민자가 들끓는 ‘스프링필드(오하이오주)와 오로라(콜로라도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치 전문매체 더힐은 TV 토론회 발언을 ‘트럼프 최악의 순간’으로 꼽았지만 정작 트럼프는 오하이오 사태에 대해 책임은커녕 반성조차 하지 않는다. 뉴스 매체들은 “오늘날 미디어 생태계에서 잘못된 정보가 빠르게 퍼지는 과정을 보여줬다”고 지적했지만 오히려 ‘이민자 침략’ 음모론이 확대되는 모양새다. 미국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는 이미 1960년대 초 미국 정치를 우려하며 정치 지도자와 추종자들이 ‘음모적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경향’이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사회학자 칼-하인츠 힐만은 음모론을 ‘정치적 권위체가 어려운 시기에 고안해 낸 주장’으로 정의한다. 음모집단으로 호명된 집단은 문제 원인으로 간주돼 지배 집단의 몫인 책임을 지게 된다. 이런 음모론은 자신들의 무능과 실패에서 비롯한 문제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비판을 무력하게 만들고 지배를 공고히 한다. 음모론이 권력 집단의 ‘면역력’을 높이는 셈이다.
트럼프의 ‘이민자 문제’는 150년 전 ‘중국인 문제’처럼 복잡하며 예측하기 힘든 현실 사회의 어려움을 설명하는 단순한 틀이다. 열악한 상황의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해 나를 방어하는 손쉬운 방편이다. 탐탁지 않거나 고통스럽고 불행한 사태는 모두 음모집단의 탓이다. 작가 티모시 멜리는 ‘음모의 제국’에서 음모론의 매력을 ‘설명되지 않는 사태, 매우 복잡한 사건에 대한 설명을 간단한 방식으로 제시’하여 ‘불확실성의 시대에 편안함을 제공’하는 것이라 했다. 문제는 음모론이 활개 치는 사회에서 감시와 비판이 무력해진다는 것이다. 권력은 더 강력한 음모를 꾸며 막강해지고 비판은 아주 쉽게 다른 음모론으로 폐기처분된다. 권력이 책임질 일은 자꾸 생기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기에 혼돈이 가중된다. 그렇다면 출구는 있는가. 음모가 활개를 칠수록 ‘정치적 책임’을 따져야 한다. 그들은 물론 ‘우리’까지도.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