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곡선 안전운항 임무 마친 ‘호송리’에게 발급한 문서
조선시대 연안을 항해했던 조운선을 비롯한 나라 배(관선, 官船)는 지정된 항로만을 이용해야 했다. 특히 세곡을 실은 조운선단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안전하게 강과 바다를 지나가는 일이었다. 조선 정부에서는 조운선단이 움직일 때 해당 수역을 관할하는 관청에서 물길을 잘 아는 관리를 파견해 직접 배에 승선시킨 후 담당 해역의 시작부터 끝까지 안내를 맡겼다. 임무를 마친 관리는 조운선단의 책임자로부터 물길을 안전하게 안내를 마쳤다는 증명서를 발급받았는데, 이것이 바로 과거장이다.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과거장은 1815년 전라도 영암군 고부군 영암군 충청도 은진현(현재 충남 논산시 은진현)에서 거둔 세곡을 운반하는 조운선 3척이 5월 23일 태안군과 24일 안흥진을 무사히 지나가면서 물길 안내를 맡았던 관리에게 발급한 증명서이다.
19세기 중·후엽의 조운 과정을 자세히 담고 있는 우리관 소장품 ‘조행일록’에는 과거장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하나를 들자면 조운선단이 지나감에도 불구하고 물길을 안내하는 관리가 오지 않아 곤란을 겪은 일이다. 함열현감 임교진은 1863년 조운선 열두 척에 세곡 1만3000여 석을 싣고 금강에서 출발해 한양으로 향한다. 이때 관할 수역의 물길 안내를 맡은 관리가 번번이 나타나지 않아 해당 지방관에게 편지를 쓰기도 하고, 크게 꾸짖기도 한다. 특히 조운선이 지나간 지 한참 뒤에 과거장을 받으러 온 관리들을 모아 문책하고, 단단히 타이른 후 과거장을 작성해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조선시대 연안항로를 통행할 때는 항로의 길라잡이 역할을 하던 관리(호송리)의 역할을 매우 중요시 여겼다.
현재도 선박들이 오갈 때 유사한 기능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 해안지역 곳곳에 세워져 있는 VTS(Vessel Traffic Service, 해상교통관제)가 그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선박의 안전한 운항과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립해양박물관에서는 10월 27일까지 조선 후기 조운의 모든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획전시 ‘조행일록, 서해바다로 나라 곡식을 옮기다’를 열고 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 강과 바다를 안전하게 지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쓴 선조들의 노력을 되짚어 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 국립해양박물관·국제신문 공동 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