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물·SF·누아르…한 영화로 여러 장르 연기, 경이로운 경험”
- 이명세 감독 기획 옴니버스영화
- 6년 만의 국내 복귀작으로 선택
- 이 감독의 ‘무성영화’ 대본 받고
- “드디어 영화로 예술 하네” 감격
- 연기인생 새로운 모멘텀될 작품
2018년 영화 ‘궁합’ 이후 주로 일본에서 활동한 심은경이 6년 만에 한국 관객과 만난다. 그녀의 컴백작은 이명세 감독이 기획한 옴니버스 영화 ‘더 킬러스’로, 네 편의 단편 영화에 출연하며 화려한 복귀를 알렸다.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심은경은 “오랜만에 한국 관객과 만날 생각을 하니 너무 긴장된다”고 개봉을 앞둔 심정을 표현했다.
‘더 킬러스’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소설 ‘살인자들’을 네 명의 감독이 자신만의 시선으로 재해석해 연출한 네 편의 살인극이다. 김종관 감독이 등에 칼이 꽂힌 채 의문의 바에서 눈을 뜬 한 남자와 미스터리한 바텐더의 이야기를 다룬 ‘변신’을, 노덕 감독이 어리바리 살인 청부업자 3인방이 엉뚱한 타깃을 납치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업자들’을, 장항준 감독이 왼쪽 어깨에 수선화 문신이 있다는 단서만으로 선술집에서 살인마를 기다리는 사내들의 이야기를 그린 ‘모두가 그를 기다린다’를 연출했다. 그리고 이명세 감독이 지하 세계 디아스포라 시티에 타깃을 찾아온 두 킬러가 등장하며 벌어지는 누아르 영화 ‘무성영화’로 ‘더 킬러스’를 마무리한다. 심은경은 네 편의 영화에 각기 다른 캐릭터로 출연했다.(실은 ‘더 킬러스’에는 두 편의 단편 영화가 더 있으며, 심은경은 이 두 작품에도 모두 출연했다. 이 두 작품은 극장판에서는 빠졌으나 OTT에 공개될 때 포함될 예정이다.)
심은경은 “이전부터 연이 있던 이명세 감독님이 어느 날 재미있는 것 한 번 해보자고 하셨다. 처음에는 감독님이 연출한 ‘무성영화’를 제안하셨다. 그러다 한 편, 두 편 많아지면서 모든 작품에 출연하게 됐다”고 ‘더 킬러스’의 뮤즈가 된 과정을 설명했다.
배우로서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다는 보람이 있겠지만 그만큼 힘든 작업이었을 터다. 그녀는 “주변에서 역할을 계속 바꿔야 해서 힘들지 않느냐고 하는데 저는 너무 신선했고, 재밌었다. 좀 다른 관점에서 영화를 찍는 법을 배웠다”며 “뱀파이어물, SF, 누아르 등 평소 해보고 싶었던 장르의 현장을 경험한 것도 좋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더 킬러스’가 배우 생활에 새로운 모멘텀이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심은경은 각 작품을 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자기 의견을 개진했다. ‘변신’에서 처음으로 뱀파이어 바텐더 역을 맡은 그녀는 “퇴폐적이고 위험한 역할을 한 번은 해보고 싶었다”며 “김 감독님께 이 캐릭터는 바에 이런 음악을 틀어 놓을 것 같다고 추천했는데 실제로 그 음악을 쓰셨다”고 했다. 또 ‘업자들’에서는 납치당한 인물을 연기했는데, 감정의 증폭이 큰 캐릭터여서 노 감독에게 자주 전화해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무성영화’에서는 예술 영화의 맛을 느꼈다. 심은경은 “처음 대본을 받아 읽고 너무 경이롭고 이런 작품을 내가 할 수 있구나 싶어서 회사 대표님에게 ‘제가 드디어 예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영화로 예술을 하는군요’라고 했다”며 ‘무성영화’를 처음 만났던 때를 기억했다. 이어 “그렇지만 대본 자체를 처음부터 완벽하게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고, 사실 지금도 완벽하게 이해를 다 했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이 감독님께 ‘무성영화’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여쭸더니 ‘이해할 필요는 없어. 언젠가 알게 돼’라고 하시더라. 그리고 촬영이 가까워졌을 때 리허설은 필수라고 하셔서 일주일간 매일 리허설을 했다. 계속 연기와 행동을 반복하니까 자연스럽게 체화되더라”며 ‘무성영화’를 통해 연기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졌음을 고백했다. 장 감독의 ‘모두가 그를 기다린다’는 등장인물이 아니라 잡지 속 화보의 모델로 잠깐 등장한다. 심은경은 “사진으로만 나왔지만 다른 평행세계에 살고 있는 영화 ‘수상한 그녀’의 오두리라고 생각했다. 사진으로만 나간 것도 제 연기 경력에 없었기 때문에 새로웠다”고 긍정적 해석을 했다.
한편 심은경은 지난 몇 해 동안 일본 활동에 주력했다. 일본에서 ‘신문기자’ ‘블루 아워’ ‘동백정원’ 등의 영화를 촬영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국내뿐만 아니라 다양한 나라, 다양한 어떤 언어의 좋은 작품들을 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리고 2018년에 일본 소속사와 계약하면서 활동할 수 있었다”고 일본 활동의 계기를 설명했다. 특히 2020년에는 일본인 기자 역을 맡았던 ‘신문기자’로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일본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녀는 “일본 시상식을 경험한다는 의미로 참석했는데, 제 이름이 호명돼 어안이 벙벙했다. 예상외의 성과를 거둘 수 있어서 감사했고, 더욱 겸손하게 열심히 노력해야겠다고 결심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더 킬러스’를 시작으로 심은경은 개봉을 준비 중인 최국희 감독 연출 영화 ‘별빛이 내린다’와 촬영 중인 김종관 감독의 ‘낮과 밤은 서로에게’로 국내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녀는 “앞으로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고 싶다. 또 다른 나라의 좋은 작품이 있다면 일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며 서른 살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더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