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여론 눈치본 정부 ʹ손쉬운 선택ʹ… 전기료 호갱 된 韓주력산업


정부가 지난해에 이어 1년 만에 산업용 전기요금만 인상하는 ‘반쪽짜리’ 전기요금 인상안을 꺼내 들었다. 전기요금 정상화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소비용인 가정용 전기요금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정치적 수월성에만 근거해 인상안을 결정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각국이 산업용 전기에 대해 소비용보다 2배가량 낮은 요금을 적용해 자국의 산업 경쟁력을 키우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만 정반대 행보를 걷고 있다고 지적했다.

23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한국전력공사(한전)는 7차례에 걸쳐 산업용 전기요금을 인상했다. 반면 가정용 인상 횟수는 5차례에 그쳤다. 같은 기간 산업용 전기요금은 1kwh(키로와트시)당 72.6원 올라 40.4원 오른 가정용 전기요금 인상폭을 크게 웃돌았다.

전기요금은 가정용, 일반용(소상공인용), 산업용, 농업용 등으로 나뉜다. 정부는 통상 용도 구분 없이 전기요금을 일괄 인상해 왔지만 지난해 11월에 이어 이번에도 산업용 전기요금만 끌어올렸다.

정부는 그동안 공기업이 짊어지고 있었던 비용을 산업계가 분담하는 형태라고 주장했다. 최남호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에너지 가격이 올라간 부분을 한국가스공사와 한전에서 떠안고 있었다"며 “대기업이 국민경제에 빚을 지고 있었던 셈"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상대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지났기 때문에 여건이 나아진 경제주체들이 공기업이 짊어지고 있던 부분을 환원한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전기요금 산정 체계의 합리성과 형평성이 훼손됐다고 지적했다. 수요가 들쑥날쑥하고 공급 원가도 많이 들어가는 가정용과 일반용, 농업용을 대신해 비교적 사용자들의 요금 저항이 덜한 산업용에 전기요금 인상이 집중됐다는 이유에서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고압, 대용량으로 쓰고 연중 수요가 안정적인 산업용은 공급 비용이 가장 낮고, 이미 원가 회수율도 100%를 넘은 상황"이라며 “공급 원가가 많이 들고, 원가 회수율이 80% 남짓인 가정용과 일반용, 농업용을 올리고 산업용을 그대로 두는 것이 합리적인 인상 방향"이라고 지적했다.

산업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도 정부의 인상안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예전에 한국은 산업용 전기가 싸고 일반용, 가정용이 비싼 나라였는데 역전을 눈앞에 두고 있다"며 “유럽과 미국 같은 다른 나라들은 산업용을 가정용보다 낮게 유지하는 데 힘을 쏟는 상황에서 우리만 산업용에 국한해 요금을 올리는 것은 산업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상당히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특히 문제는 전력 사용량이 많은 곳이 대부분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는 주력 수출 대기업이라는 점에 있다. 곽상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전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산업용 전력 사용량 상위 20대 법인에 반도체(삼성전자·SK하이닉스), 철강(현대제철·포스코), 석유화학(LG화학·롯데케미칼), 정유(S-OIL·GS칼텍스) 등 주요 수출 업종 기업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이날 경제단체들도 정부가 발표한 산업용 전기요금 차등 인상안에 대해 일제히 우려를 표했다. 대한상의는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은 이해한다"면서도 “제조 원가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산업용 전기요금만 연속해서 인상하는 것은 성장의 원천인 기업 활동에 부담을 주고 산업 경쟁력을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인협회도 이상호 경제산업본부장 명의의 논평을 통해 “대기업에 대한 차등 인상으로 고물가·고환율·고금리로 이미 한계 상황에 놓인 국내 산업의 경영 활동이 더욱 위축될 우려가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우리 사회 전반의 에너지 효율이 개선되고 소비자에 대한 가격 신호가 정상 작동할 수 있도록 원가주의에 기반한 전기요금 결정 체계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정치적인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한 시기에 전기료 정상화에 속도를 올려야 하는데, 정부가 자칫 머뭇거리다가 때를 놓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국민 모두가 전기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요금 인상이 정치적으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것은 맞는다"며 “다만 내후년부터는 전국 단위의 선거가 연이어 있기 때문에 지금 이때를 놓치면 앞으로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준호 기자 / 한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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