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죽고 싶어” ‘옆방’ 있어 달라는 친구…당혹스러운 그 제안에 [요즘 영화]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난 잘 죽을 권리가 있어. 존엄을 지키며 퇴장할래. 깨끗하고 깔끔하게.” 말기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전직 뉴욕타임즈 종군 기자 마사(틸다 스윈튼 분)의 선언. 이내 그는 오래전 잡지사에서 같이 일했던 옛 직장 동료 잉그리드(줄리안 무어 분)에게 비밀스러운 동행을 제안한다. 스스로 생을 달리하는 순간에 그저 ‘옆방(room next door)’에 있어 달라는 것. 그렇게 죽음에 다다르는 찬란한 여정이 시작된다.

제81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룸 넥스트 도어’가 23일 극장에 걸렸다. 스페인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75) 감독의 첫 영어 장편영화다. 첫 상영회에서 관객들은 무려 17분 동안 전례 없는 기립박수를 보냈다. 알모도바르 감독은 영화 제작 배경에 대해 “이 세상에 깨끗하고 품위 있게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기본적 권리라고 믿는다”며 “이는 정치적 문제가 아닌 인간의 문제”라고 말했다.

감독의 철학을 반영하듯 영화는 이 시대의 가장 논쟁적인 주제인 안락사를 정면으로 다룬다. 매사 명확하고 직설적인 마사와 다정하고 사려 깊은 잉그리드는 간극이 큰 인물들이다. 그런데 극이 전개될수록 마사는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 굴욕스러운 고통에 자신을 내어주지 않고, 잉그리드는 그런 그의 곁에서 아무 말 없이 완벽하게 지지하며 함께 사랑과 우정을 넘어선 ‘그 어딘가’로 서서히 당도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그 순간, 감정이 휘몰아치며 비로소 시작되는 질문을 되뇌이게 되는 이유다. ‘내 곁에는 누가 있는가, 그리고 나는 누구의 곁에 있는가.’

영화 제목이기도 한 ‘옆방’이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는 인간적 유대의 공간으로 변모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옆방에서는 운명을 달리 하는 타인의 마지막 순간을 목도할 순 없다. 그러나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묵묵하게 동행할 수 있는 옆방은 고독의 경계를 넘어선 진정한 연결의 상징이다. 알모도바르 감독은 “다른 말없이 그저 함께하고 옆에 있어주는 것. 고통과 환희의 순간에 동행하는 것. 누군가와 동행하는 너그러움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이로운 감정”이라고 전했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비극적 고통을 표현하는 마사의 긴 독백에서 관객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각주를 달게 된다. 마사는 암을 마치 전쟁에서 만난 적과 같은 악으로 묘사하는 세상의 이분법적 잣대의 전복을 꾀한다. 암과 투쟁하면 ‘영웅’이나 이에 맞서지 않으면 ‘패배자’로 인식하는 시대를 향한 강력한 영화적 저항이다. 한 인간의 정체성을 질병에 종속시켜버리는 태도에 대해 알모도바르 감독은 생명력이 더욱 충만한 연출로 답을 대신한다.

그래서 영화에는 다채로운 층위의 미학으로 구현된 한 편의 시를 읽은 듯 짙은 여운을 남긴다. 특히 극중에서 나오는 제임스 조이스의 ‘죽은 사람들’ 구절은 평온한 생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장치 중 하나다. 영화 초반 병실에서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장면에서는 스윈튼의 목소리로, 숲속 집에서 영화를 보는 장면에서는 두 사람의 대화로,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무어의 목소리로 낭독되는 “모든 산 자와 죽은 자 위로 아스라이 내리는 흰 눈”은 모든 생명이라면 필연적으로 종착하게 되는 죽음을 은유한다.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세계가 확장된 것만 같은 연출적 효과도 마치 선명한 꿈을 꾸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나른하게 몸을 늘어뜨릴 수 있는 호퍼의 그림 속 선베드는 병마와 씨름하는 그저 누워 있을 수밖에 없는 병실 침대와 극적으로 대비된다. 러닝타임 1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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