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 위의 천사[유희경의 시:선(詩:選)]
‘너는 사과를 깎아놓고 간다/ 내가 이렇게 쓰고 있으면/ 너는 내 책상을 창문 쪽으로 약간 틀어주고 가고/ 내가 이렇게 쓰고 있으면/ 너는 하늘을 조금 떼어/ 필통 안에 넣어놓는다/ 내가 이렇게 쓰고 있으면/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끔은 가지도 않는다’
- 김선오 ‘내가 이렇게 쓰고 있으면’(시집 ‘싱코페이션’)
통영에서 마산으로 가는 길이다. 마산을 슬쩍 둘러보고 서울로 돌아갈 예정이다. 통영에서 마산까지는 버스로, 마산에서 서울까지는 기차로. 이 모든 일이 하루 동안 가능하다니 새삼 신기하다, 생각하면서 차창 밖을 구경하고 있다. 어디든 아직 푸르다. 가을까지 좀 남았다.
전날엔 대구의 아담 소담한 작은 책방에서 한 달 전 펴낸 책을 앞에 두고 북토크가 있었다. 행사가 끝나고는 자연스럽게 작은 술자리로 이어졌다. 마주 앉은 독자 한 분이 질문을 건네왔다. “대체 글이란 건 어떻게 쓰는 건가요.” 작가에게 묻기 무색하고 무례하지만, 술김에 용기를 내어본다는 그에게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나 막막해서 애꿎은 술잔만 노려보았다. 이른바 데뷔라는 걸 한 지 열여섯 해. 그럼에도 모르겠다. 그렇게 대답하면 성의 없다 느끼겠지. 잠시 잠깐 상념 끝에 불쑥 “천사가 있어요” 하고 대답했다. “써야 할 때를 알려주고 쓰는 것을 포기하지 않게 해주고, 써놓은 글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천사.” 독자는 재미난 얘기를 들었다는 듯 웃었지만, 말해놓고 나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천사가 내 어깨 위에 앉아 있는 건 아닐까. 잘하고 있어. 그건 아니야. 더 좋은 표현이 있을 것 같아. 속삭여 주면서.
통영에서 마산을 향해 한없이 이어질 것 같은 아직 초록의 풍경 속을 내달리면서 나는 다시 한 번 천사를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천사가 태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보고 들은 것, 그로 말미암아 떠오르는 생각들 모든 것이 ‘천사’이고, 집으로 돌아가 책상 앞에 앉을 때 그들이 내게 찾아온다고. 올 거라고. 용기가 생겼다.
시인·서점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