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완결 1년 앞두고… 대만, 원전 재개 움직임


지난 21일 대만의 줘룽타이(卓榮泰) 행정원장(총리)은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대만은 반도체 제조 업체의 급증하는 전기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새로운 원전 기술에 완전히 열려 있다”며 “대만 내부에서 원전 안전과 핵폐기물 처리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를 이룰 수 있다면 (원전 재개를 위한) 공개 토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줘 총리는 민진당 소속으로, 이 당은 2016년부터 대만의 탈원전 정책을 주도해 왔다. 야당인 국민당은 친원전 입장이다. 원전에 대한 집권 민진당의 입장이 최종적으로 변하면, 대만의 탈원전 정책이 뒤바뀔 수 있는 것이다.

지진이 빈번한 대만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여파로 2016년부터 탈원전에 들어갔다. 원전 총 6기 가운데 5기가 폐쇄됐고, 예정대로라면 내년 5월 마지막 원전 1기도 멈춘다. 하지만 완전 탈원전 7개월을 남겨 두고 정부 최고위 인사가 탈원전 정책 폐기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블룸버그는 “줘 원장의 발언은 정부가 기존 탈원전 정책 기조를 검토하고 있다는 가장 명확한 신호”라고 풀이했다.

대만은 주요국 가운데 독일과 함께 탈원전을 추진하는 국가다. 하지만 전력 수요가 많은 반도체·데이터센터 등이 주력인 대만은 전력 부족으로 대규모 정전을 겪으며 원전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만 경제 단체들은 기업 환경과 투자 여건을 개선하려면 전력 수급 불안이 해소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탈원전을 강력하게 추진해 온 집권 민진당에서도 탈원전 폐기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TSMC 전력량 5년 만에 70% 늘어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대만에선 탈원전 지지가 확산됐다. 민진당 소속 차이잉원 전 총통은 2016년 취임 당시 “2025년까지 대만 내 모든 원전의 원자로를 폐쇄하고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실행에 들어갔다. 대만 발전량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6년 12%에서 지난해 6.3%로 낮아졌다.

대만의 탈원전은 인공지능(AI) 열풍에 막혔다. TSMC을 비롯한 반도체 제조 업체들이 공장을 잇따라 신설하고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면서 대만의 전력 소비가 급증했다. 대만 전체의 전력 사용량(조명용 제외)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5.7% 증가했다. 특히 같은 기간 반도체 제조 업계의 전력 사용량은 41.6% 급증했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확보해야 하는 전력 설비 예비율(발전설비 용량 대비 최대 전력 수요)은 최근 3년 연속 법정 기준(15%)을 하회했다. 결국 반도체 제조업의 전력 사용량이 전체의 4분의 1에 육박하자, 정부는 올 들어 대규모 산업용 전기 요금을 15% 올렸다.

대만의 전력 수급 문제는 산업계에 직접 타격을 주고 있다. 지난 8월 대만 정부는 전력 부족을 우려해 북부 타오위안 지역에 5메가와트(㎿) 이상의 데이터센터 건설 승인을 중단하기로 했다. 실제 지난해 9월 이후 대만 북부 지역에 대형 데이터센터가 승인된 사례가 없다. 탈원전 계획에 따라 이 지역 원전은 이미 폐쇄된 상태다. 대만에는 현재 데이터센터 15개가 가동 중이고, 5개가 건설 중이다.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등이 대형 데이터센터를 짓겠다는 계획을 잇달아 발표해 지금의 전력 공급으로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대만 탈원전에 반도체 공급망 ‘비상’

탈원전으로 인한 대만의 전력 부족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도 영향을 미친다. 미국 매체 CNBC는 “반도체 강국 대만이 심각한 에너지·전기 위기에 직면하면서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 빨간불이 켜졌다”고 했다. 전력 부족으로 대만의 반도체 공장이 가동을 멈추면, TSMC에서 반도체를 공급받는 애플과 엔비디아 등이 영향을 받는다. 더구나 반도체 공장은 한번 멈추면, 재가동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TSMC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세계 점유율은 60%를 웃돈다.

대만에서 탈원전 폐기가 본격 검토되는 것은 원전 이외 다른 전력 공급원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만은 석탄과 가스를 주로 사용하는데, 수요의 97% 이상을 수입에 의존한다. 대만처럼 탈원전을 한 독일의 경우, 프랑스 등 인근 유럽 국가에서 전력 수입이 가능하지만, 섬나라인 대만은 그렇게 할 수 없다. 국토가 좁고 인구 밀집도가 높아 재생에너지 발전도 쉽지 않다.

대만 언론들은 오랫동안 탈원전을 주도한 집권당이 원전 정책을 조심스럽게 수정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줘룽타이 원장은 “이미 폐쇄한 원전 직원들에게 계속 발전소에 머물도록 요구했다”며 “이것은 우리가 미래 원전 기술 발전에 준비를 하기 위해서이며 어떤 가능한 상황에도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대만의 탈원전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하자 지진이 잦은 대만에서 탈원전 여론이 거셌다. 차이잉원(蔡英文) 전 대만 총통이 이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고, 2016년 취임하면서 2025년까지 ‘원전 제로(0)’를 약속했다. 대만에는 총 세 군데의 원자력발전소에 여섯 기의 원자로가 있었는데, 지난 7월까지 다섯 기가 가동 중단됐다. 마지막 한 기는 내년 5월 폐쇄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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