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금은 스포츠 대전환 시대…새판을 짜자


‘스포츠는 사회의 축소판(microcosm)‘이다. 현실과 이상, 구조와 모순까지 사회의 모습이 고스란히 스포츠 세계에 투영되기 때문이다. 지고한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스포츠에서 발견할 때가 있다.

반면에 짙은 농도의, 찐득찐득한 어둠이 드러날 때도 있다. 최근 대한체육회를 비롯해 축구와 대한배드민턴협회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이 딱 그렇다. 이는 단순히 몇몇 조직의 치부가 폭로된 것이 아니다. 스포츠계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와 한계가 노출된 것이다.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단식 금메달리스트 안세영 선수가 작심 발언을 했을 때, 우리는 처음에 어리둥절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알게 되면서 분노하게 됐고, 지금은 약간의 기대도 있지만 대부분 불안한 눈길로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안 선수의 발언 당시만 해도 ‘매니지먼트 회사의 음모’니 ‘어린 선수의 이기적 욕심’이니 배경에 대한 해석이 분분했다. 모두 틀렸다.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원인을 명확히 진단해야 하고, 과녁을 정확히 겨냥해야 한다.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단언컨대, 현 사태의 원인은 아직도 많은 스포츠 조직에 똬리를 틀고 있는 뿌리 깊은 (무)의식과 관행, 악습에 있다. 그 기원은 군사정권 시대를 넘어 스포츠가 한반도에 소개된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회장이 내부 목소리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행동한다면, 측근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개인의 권리를 조직 논리로 부당하게 침해한다면, 그 조직의 ‘습속과 행태’는 후진 것이다.

실력보다 권위가 위력을 발휘하고, 과정보다 결과가 우선시되어 자율을 억압이 압도하는 스포츠 조직이라면 미래는 없다. 선수들은 이제 강요된 결과에 만족하기보다 스스로 설정한 목표를 스포츠맨십에 의해 달성하는 데서 성취감을 느낀다. 문제는 과거 권위적인 정권에서 힘을 발휘하던 작동 논리들이고, 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스포츠는 지금 대전환의 시대를 맞았다. 새롭게 판을 짜고 재도약할 수 있는 다시 없는 기회다. 선수와 국민은 ‘성과’의 시대에서 ‘성취’의 시대로 가자고 요구한다. 권력과 강제에서 과학과 시스템으로, 당근과 채찍에서 지속가능한 스포츠 문화로 가자고 한다. 한국의 스포츠를 주도하는 한 줌의 집단이 과거의 관행과 습관, 인식과 태도를 버리지 못한다면, 이제는 그저 제거돼야 할 걸림돌일 뿐이다.

2022년부터 시행된 스포츠기본법은 스포츠에 대한 국민의 권리는 물론 스포츠의 위상과 가치를 높이기 위해 제정됐다.

특히 스포츠의 가치를 교육, 문화, 환경, 인권, 복지, 정치, 경제, 여가 등 사회 전반에 걸쳐 확산시키는 것이 ‘국가의 책임’임을 제5조에서 명확히 하고 있다. 정치의 스포츠 개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성과 자율성, 민주성을 갖는 스포츠의 원리가 실현될 수 있도록 정치의 힘이 길을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내부적으로 해결할 힘이 없을 때는 더욱 그렇다.

지난 파리올림픽 출전 선수 중 하버드대 졸업생이 육상 금메달을 획득했다는 뉴스가 화제였다. 스탠퍼드대 졸업생의 금메달이 30개가 넘는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런 스포츠 시스템을 갖춘 나라도 있는데 ‘회장천국, 선수무덤’인 나라에서 산다면 너무 참담하지 않은가. 스포츠계의 새판을 짜자.

[유상건 상명대 스포츠ICT융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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