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여전히 반도체 공급망 중심…디커플링 신중해야”
미·중 무역갈등이 심화하고 미국이 대(對)중국 반도체 제재에 동참할 것을 동맹국에 촉구하면서 한국의 ‘반도체 동맹외교 딜레마’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분석됐다. 미·중 무역전쟁 여파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여전히 반도체 제조 공급망 허브 기능을 유지하며 미국을 제외한 한국과 일본, 대만 등과 긴밀한 상호보완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계 일각에선 중국과의 급격한 디커플링(탈동조화)은 신중해야 하며,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국내 생태계 강화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는 22일 ‘반도체 5대 강국의 수출입 결합도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미국을 제외한 반도체 4대 강국 간 무역 상호의존도가 여전히 높아 미국의 우방국 중심 공급망 재편이 빠른 시일 내 이뤄지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고서가 제시한 반도체 5대 강국은 미국, 중국, 한국, 일본, 대만 등이다.
SGI가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반도체 4대 강국 간의 무역 상호의존도가 여전히 높다고 제시한 근거는 중국과의 ‘수출입 결합도’ 분석 결과다. 수출입 결합도는 양국 간 무역 연계성을 나타내는 지표로 꼽힌다. 예컨대 중국의 대한국 수입 결합도는 중국의 전체 수입 중 한국 수입 비중을 전체 수출 중 한국 수출 비중으로 나눈 값이다. 결합도가 1보다 크면 클수록 양국 무역관계는 상호 의존성이 더 커진다.
SGI가 2022년 기준 중국의 주요 국가 수입 결합도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메모리 2.28·시스템 2.12)과 대만(메모리 1.50·시스템 1.29), 일본(메모리 1.44·시스템 2.05) 등으로 한국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다른 국가들보다 한국으로부터의 반도체 관련 수입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의미다. 반면 중국의 미국과의 메모리 반도체 수출 결합도는 0.62, 수입 결합도는 0.88로 양국 무역 보완성은 크게 떨어졌다. SGI 관계자는 “중국은 여전히 글로벌 반도체 제조 공급망 허브로서 기능하고 있다”며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 시스템 반도체는 대만과 긴밀한 생산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한국 반도체 산업 수출이 중국을 거점으로 한 글로벌 공급망 체인에 편입돼 있는 만큼, 중국과의 급격한 탈동조화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인공지능(AI) 등 첨단 반도체 기술 부문에서 미국의 우방국 중심 공급망 구축에 협력해 나가되, 범용 반도체 부문에서는 중국과의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정부가 반도체 클러스터(집적단지) 조성, 전력공급 등 인프라 확대, 벤처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강화 등 관련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박양수 SGI 원장은 “우리 기업이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도록 정부가 첨단산업 투자에 대한 보조금 지급이나 직접 환급 등 재정지원 조치를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