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당신의 하루가 노벨상의 실증 [김선걸 칼럼]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런 애쓰모글루는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에서 한국과 북한 사례를 든다. 자유 체제를 택한 한국은 기적 같은 선진국을 이룩했고, 공산 체제를 택한 북한은 그 반대로 갔다는 내용이다.

노벨상 발표 다음 날, 북한은 경의선 북측 도로를 폭파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걸어서 북을 방문했던 그 길이다. 북한은 한층 더 고립되는 길을 택했다.

애쓰모글루의 이론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한 국가의 경제는 정치에 의해 좌우되며, 정치적으로 포용적 경제 제도를 선택한 쪽이 착취적 경제 제도를 선택한 쪽보다 번영한다.” 저서에는 한반도 얘기만 있는 게 아니다. 담장 하나로 북쪽은 미국, 남쪽은 멕시코가 된 노갈레스(Nogales)시가 비슷한 사례다. 중국·러시아·콩고·소말리아에 대한 분석도 있다.

지난 2018년 기억이 떠오른다.

문재인정부 출범 2년 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고 평화 무드가 절정을 달렸다. 통일이 손에 잡힐 듯했다. 최소한 진전된 경제 협력은 가시화됐다. 문재인정부의 과대 포장을 감안하더라도, 실제 남북 협력의 파고는 높았다. 북한 이슈는 일말의 가능성만으로도 준비를 소홀히 할 순 없는 과제다.

기업마다 북한 전문직원 채용 붐이 일었다. 언론사도 마찬가지였다. 필자는 담당 데스크로 채용 인터뷰를 수차례 진행했다. 지원자 대부분이 탈북자였다. 탈북자들의 인생사를 속 깊게 들어본 건 처음이었다.

처절한 탈북 행로는 글로 묘사조차 힘들다. 영하 40도의 두만강을 건너다 겪은 가족과의 생이별, 친구의 희생으로 홀로 탈북한 애달픈 사연,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피해 지낸 얘기가 절절했다. 그 전 북한에서의 삶도 참담했다. 동네 사람 모두가 끌려 나와 참관한 공개처형, 강제수용소에서 받았던 비인간적 대우…. 익히 짐작은 했지만 마주 앉은 당사자에게 직접 듣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그러나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그 이후였다. 한국에서 삶을 말할 때다. 로스쿨에 재학하거나 졸업한 사람, MBA나 박사를 딴 사람도 있었다. 화목한 가정을 꾸려 자녀를 그 어렵다는 영재학교에 보낸 사람도 있었다. 아이를 씻겨 어린이집에 보내고 아내와 커피 한 잔을 들고 외출하고…. 방금 전 얘기하던 사람이 맞나? 처참했던 북에서의 삶과 너무 달랐다.

인터뷰 중 북한 일상서 한국 일상으로 소재가 바뀌는 순간이 기억난다. 분명히 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컴컴한 밤에서 환한 낮으로 바뀌듯 달라 보였다. 경이로웠다.

물론 이들은 탈북자 중 잘 적응한 소수다. 일반화하기는 힘들다. 심지어 그들조차 아직도 적응의 어려움을 겪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운명이 착취에서 포용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애쓰모글루는 저서에서 번영과 제도의 인과관계를 이론으로 정립했다. 필자는 탈북자들을 통해 동일 인물이 그 제도에 따라 극에서 극으로 달라지는 모습을 확인했다. 한국이 택한 포용적 제도는 착취적 제도에서 자라난 사람마저 포용하는 경쟁력이 있었다.

애쓰모글루의 책에도 한국의 ‘황평원 씨’ 사례가 나온다. 한국전쟁 때 납북된 그의 동생은 북한서도 꽤 괜찮은 직업인 의사였지만 이산가족 상봉 때 만나보니 헐벗고 가난했다는 내용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 한국에 살고 있는 모두가 올해 노벨경제학상 이론의 실증인 셈이다. 공산주의를 막아내고 경제 발전을 이룬 역사의 거인들과 군사 독재로 흐를 뻔한 물줄기를 틀어버린 국민들이 없었다면? 지금 이 시간 우리는 헐벗고 굶주린 하루를 살아내야 할 테니.■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1호 (2024.10.23~2024.10.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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